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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신비

우주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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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 탐사

우주탐사는 우주에 인공위성이나 탐사선을 보내서 우주공간을 탐사하는 것이다. 우주선이나 우주망원경을 이용하여 태양계의 행성을 탐사 중이다. 우주에 있는 천체를 관찰하는 것을 천문학이라고 한다. 초기의 우주탐사는 미국과 소련 간 우주 경쟁에 의해 시작되었다.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는 1957년 소련에서 발사했다. 스푸트니크는 여행의 동반자라는 의미의 러시아어이다. 1969년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유인 달착륙에 성공하였다. 국제 우주 경쟁은 현재 국제 우주 정거장을 만듦으로서 협력 연구로 발전하였다. 우주 탐사를 위한 로켓은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약 10년간의 노력 끝에 우주 왕복선을 개발하여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한 로켓이 1981년 컬럼비아호이다. 과학자를 실험 장치와 함께 우주 왕복선에 탑승시킬 수 있었다. 컬럼비아호는 2003년 재돌입 도중 폭발하였고, 현재 이를 대체할 우주왕복선은 없다. 우주 왕복선은 국제 우주정거장의 승무원 교체, 허블 우주망원경의 수리, 지구 저궤도로의 수송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우주 왕복선은 아직 지금까지 비용이 매우 비싸다는 단점이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는 가격이 낮은 우주 왕복선을 계속해서 개발 중에 있다.

 

 

2. 태양계 탐사

우주 비행 탐사 계획에는 크게 4가지가 있으며 머큐리 계획, 아폴로 계획, 제미니 계획, 아폴로-소유즈 계획이 있다. 

1) 머큐리 계획(Project Mercury)

머큐리는 로마 신화의 신 머큐리(수성)에서 따왔다.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 탐사계획으로 1958~1963년 동안 6명의 우주인을 비행시키겠다는 미항공우주국(The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의 계획이었다. 1959년 원숭이 샘이 머큐리 우주선을 타고 11분 6초 동안 탄도 비행을 한 것이 본격적인 동물의 우주비행이었다.

1961년 폰 브라운 박사의 레드스톤 로켓으로 앨런 셰퍼드 중령에 의한 유인 시험비행이 성공했고, 그 결과 아폴로 계획이 결정되었다. 머큐리 계획의 총 비행시간은 비록 2일 6시간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으나, 안전하게 설계된 우주선과 무중력에서 인간의 적응법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고 임무를 충실히 했다고 평가되었고 머큐리 계획의 성과는 추후 제미니 계획과 아폴로 계획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2) 제미니 계획(Project Gemini)

제미니는 라틴어로 쌍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머큐리 계획의 다음 단계로 2인승 유인 우주선 계획이다. 1966년까지 미항공우주국에 의해 진행되었다. 존 F.케네디는 머큐리 프리덤 7호의 성공적인 비행 직후 역사적인 연설을 했었다. "미국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고, 지구로 무사히 돌아오게 하는 목표를 달성하겠다." 달 탐험을 위한 우주비행 경험과 도킹이나 분리 기술 등 2인승 우주선을 이용한 장기간의 비행, 아폴로 계획으로 필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2주간 우주 비행이 가능한 우주선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처음에는 머큐리 마크2라고 명명했으나 정식 명칭은 제미니로 정해졌다. 제미니 1호는 87분 27초 만에 지구 일주를 하고 나흘 동안 궤도 비행하다가 귀환했고, 로봇을 실은 무인 비행이었다. 타이탄 2호 발사선의 궤도 진입 성공, 우주선의 발사체와 호환성 테스트, 우주선 구조의 보존 등이 1호 우주선의 임무였다. 제미니 2호는 대기권 재돌입과 회수, 비행 중 조종계와 지상과의 통신 시스템 점검 등의 임무가 있었다. 유인 우주선은 제미니 3호부터인데, 제미니 3호는 1965년 버질 I, 그림섬 소령과 존 W. 영소령이 탑승하여 발사된 미국 최초의 2인 유인 우주비행이었다. 

 

 

3) 아폴로 계획(Project Apollo)

아폴로 계획은 1961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미항공우주국에 의해 이루어진 유인 우주비행 탐사계획으로 6차례의 달 착륙이 진행되었다. 성공과 더불어 두차례의 큰 사고가 있었는데, 1967년 지상 훈련 중이던 아폴로 1호가 화재로 인해 3명의 비행사가 사망하였고, 1970년에는 아폴로 13호가 장비 고장에 의해 달 궤도만 선회하고 지구로 간신히 귀환했다. 아폴로 계획은 우주개발 계획에 있어서 그간 미국이 소련에 뒤처지고 있던 이미지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폴로 17호로 아폴로 계획은 마무리가 되었는데, 아폴로 17호의 목적은 바다 물질들과 분지 주위의 고지대 물질의 암석 샘플 채취, 그리고 진화 관계를 조사하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연구는 궤도상의 관측과 촬영 사진을 기초로 하여 진행되었고, 연구의 범위는 크레이터 개별의 구성 연구와 태양의 코로나 연구, 바다의 층위, 봉우리의 배열 연구에 이르렀다.

4) 아폴로-소유즈 계획(Apollo-Soyuz)

최초로 미국과 소련 두 국가가 같이 협업하여 수행한 유인 우주비행선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미, 소련 양국 간의 경쟁적 우주 진출 경쟁에서 인류의 발전을 위한 협력적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미, 소련간의 냉전이 완화되는 데탕트의 상징을 가져온 프로젝트 였다. 이 계획을 통해 과학계의 진로와 실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유인 비행 시 랑데부, 도킹 비행 경험을 바탕으로 도킹 시스템 발전에 기여를 하게 되었다. 또한, 비행 중 승무원의 이동이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계획은 아폴로 우주선을 사용한 마지막 비행으로 사령선은 캘리포니아 과학 센터에 전시 중이다. 워싱턴 D.C. 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소유즈 본체와 아폴로 우주선의 실물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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